2016년 2월 7일 아침 9시.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쏘아 올렸다. 핵실험을 네 차례나 한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에 성공한 것이다, 그에 대항하여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 운용을 중단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필자는 러시아 모스코바 대학에서 그곳 고려인들과 만나 한국사와 우리 민족의 장래문제에 관해 대화를 나누기로 되어 있었으니 걱정이 태산 같은
올해 겨울에 추위가 와서 우리나라는 지구온난화와 거리가 멀다 싶었더니 그것이 아니다. 지구온난화로 매서운 추위가 왔다는 것이다. 청년 실업자가 느는 것도 유럽에 중동 난민이 몰려드는 것도 모두 지구온난화와 무관하지 않다고 하니 과학기술이 발전했다고 하여 좋아할 일이 아니다. 수제 드론을 만들었다고 좋아하는 것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요즘 중동에서는
인류 종말에 관한 예언은 기독교가 그 본산지다.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다는 것이 상식인데 동서양 모두가 그렇게 보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무시무종(無始無終) 즉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는 것이 상식이었다. 이것을 순환론이라 하는데 기독교에서만 역사의 종말을 주장한다. 그런 종말론이 이제는 과학자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으니 심상한 일이 아니다.
요즘 신문에 연일 검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나타나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인류 역사는 무한히 발전한다고 하더니 발전은 커녕 퇴보하고 있는 것이다. 100년 전 우리나라가 망하기 2년 전인데 안국선(安國善)이란 선비가 이란 소설을 썼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까마귀, 여우, 개구리, 꿀벌, 계, 파리, 호랑이 그
요즘 검인정 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문제로 여야가 시끄럽다. 세월호 사건 이후 단 하루도 쉴 날이 없다 할 정도로 시끄러웠으니 이제는 좀 조용히 지냈으면 좋겠다. 그러나 교과서 문제가 갑자기 불거져 나와 나라 안이 또다시 시끄럽다. 우리 역사의 머리인 고조선이 망가지고 없다는 사실부터 챙겨야 할 일을 엉뚱한 곳에 초점을 맞추어 언성을 높이고 있다. 문제는 근
속아서 한평생이란 말이 있다. 누구나 속고도 속은 줄 모르고 한세상을 보낸다. 우리가 속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2000년 고조선의 역사를 잃고도 잃은 줄 모르고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이병도에게 배운 강단사학자들에게 물어보아야 그들은 모른다. 차라리 소설가 이광수에게 물어보는 것이 낫다. 이광수는 일제 말기인 1942년에 소설『원효대사』를 썼다.
1. 임금의 청탁을 거절한 법관 정철송강이라고 하면 가사 관동별곡(關東別曲)을 머리에 떠올리겠지만 송강 정철(松江 鄭澈, 1536∼1593)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청백리의 한 사람이었다. 정철은 중종 31년 서기 153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4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나 남부끄럽지 않은 환경에서 자랐는데 10살 때 아버지가 ‘을사사화(乙巳士禍)’에
이병도 사학은 광복 후 학계와 정계 그리고 문화계까지 모두 지배하였다. 그러나 이병도 사학은 일제식민사학을 극복하는 데 충실하지도 않았고 충분하지도 않았다. 이병도 사학의 유산 가운데 가장 큰 덕목, 아니 죄목은 서기전 2333년에 단군이 조선을 건국하였다는 『삼국유사』 고조선 조의 기록을 사실이 아니라 신화라 한 것이다. 단군을 말살한 세력이 바로 일본
우리에게 본래 고유한 문화가 있었는가. 새로 무엇인가 나왔다 하면 모조리 위서(僞書)로 보는 풍토가 우리나라를 지배한다. 그런 풍토에서는 문화가 발전할 수 없다. 요즘 문학계에 표절 시비가 붙어서 한편 불쾌하기도 하지만 반갑기도 하다. 한 젊은 작가가 몰매를 맞는 것을 보니 시원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위서니 표절이니 하는 문제는 많은 독자를 속이는
독일은 통일되었는데 우리 한국은 왜 통일되지 않는가. 미국과 소련이 통일을 바라지 않았다는 이유로 6.25가 흐지부지 끝난다는데 가장 큰 원인이 있었다. 맥아더가 압록강 다리를 완전히 끊어버리고자 결심했으나 트루먼이 반대하여 압록강 철교는 지금도 반 토막이다. 유명한 유행가 신라의 달밤과 흥남부두의 두 노래가 통일이 무산된 그 때 그 노래였다는 사실을 잊어